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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여러가지 이야기

사람을 먼저 찾아오게 하는 배우 황정민

by 건강 탐구생활 2022.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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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황정민

황정민은 영화 속에서 송곳처럼 뾰족하게 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과연 한 배우의 필모그래피가 맞나 싶을 만큼 드라마와 스릴러, 멜로, 액션에 이르기까지 황정민의 종횡무진 활력이 시작됐다. 2년 연속 1000만 관객 영화의 신화를 일궈낸 것은 절대 행운이 아니었다. 그의 노력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였다.

황정민
▲ 천 만 배우 황정민  사진-국민일보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CGV 피카디리 1958' 명예전당에 선정된 황정민의 소개 글입니다. 그가 배우계에서 대단한 자리에 올라섰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근데 이런 그에게 10년이 넘는 무명 시절이 존재했다고 말하면 믿을 수 있을까요? 1년 수입은 고작 300만 원이었으며 아무도 그를 찾아주지 않았죠. 하지만 그는 그때도 행복했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왔던 걸까요?

 

황정민 어린 시절

황정민은 1970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합포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같은 마산 출신인 강호동과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다고 하며 이후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하지만 지방에서 전학 와 사투리를 쓰는 황정민을 처음 본 동급생들은 그를 무시하며 놀렸고 이에 황정민은 무섭게 돌변했는데 이때 순박한 자신에게도 어두운 면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는 서울에서 나름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며 지내던 중 지방에서는 잘 누리지 못했던 문화생활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특히 연극을 보러 다니며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꿈을 갖게 됩니다. 이에 그는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계원예술고등학교에 진학 후 제대로 연기 공부를 하기 시작했으며 무려 서울예술대학교에 진학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배우가 되다

그렇게 그는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고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에서 단역으로 뽑히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리는 것 같았죠. 하지만 그는 촬영장에 가서 엄청난 벽을 느끼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연기를 준비했고 학력도 좋았지만 막상 카메라 앞에 서니 대사 한마디도 제대로 뵙지 못했죠. 결국 감독은 황정민을 혼냈고 그가 나오는 장면의 대사를 다른 성우의 더빙으로 입혀버립니다.

 

 

연기 천재로 불리는 지금의 황정민을 생각하면 이때 그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지만 그는 사실 재능보다는 노력형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배우 자체가 되기 위해 헌신의 힘을 기울이게 되는데 첫 번째는 사투리를 완전히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부모님과 1년간 대화도 하지 않고 어린아이들의 말을 녹음해 들으면서 연습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그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들을 진실된 연기에 활용하기 위해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평소에 느끼기 힘들 만한 감정들은 따로 다른 사람의 삶을 직접 살아보면서까지 체득했다고 합니다. 로드무비를 찍을 때는 실제 서울역에서 일주일간 노숙을 하기도 하며 그들과 같이 자고 같이 먹었고 누군가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을 때 남의 인생을 사는데 그렇게 쉽게 살 수 있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는 무려 10년이 넘는 무명 생활 동안 피나는 노력을 통해 조금씩 영화의 단역과 조연을 맡아오다가 2005년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단 4분짜리 단역임에도 불구하고, 백사장 역할로 인상 깊은 악역 메서드 연기를 펼치며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같은 해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주연으로 출연하며 에이즈에 걸린 여성에게 사랑에 빠진 순박한 노총각 역할을 인상 깊게 해내면서 같은 해 청룡 영화상에서 무려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실력을 대중들에게 완벽히 증명해 냈습니다.

 

그의 성공과 마인드

이때 소상소감을 들어보면 황정민이 배우로서 자기 자신의 일에 임하는 철학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알 수 있는데요. 이 수상 소감은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솔직히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여 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이렇게 차려놔요. 그럼 저는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근데 스포트는 제가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그냥 수상소감이니까 겸손하게 말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다른 명언들을 살펴보면 이는 겸손하려고 한 말이라기보다는 정말 그는 연기에만 집중하기 위해 연기 이외에 인기나 평가, 그 외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일부러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후 대표적인 작품만 해도 신세계, 국제시장, 히말라야, 베테랑, 곡성, 아수라, 공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헌트, 수리남 등등 출연할 때마다 대박을 터트리며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죠. 만약 10년의 무명 생활을 버티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황정민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일에 대한 그의 철학

그는 막연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수익 300만 원을 견뎌내면서까지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요? 그에겐 확고한 자기만의 철학이 존재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계속 연극하고 뮤지컬 하고 대학로에서 있으면서 연봉 300을 받으면서도 아주 행복해하면서 일을 했는데 이유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하는 일에 자랑스러움이 없다면 절대 배우가 될 수 없으니 정말 이 일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하고 몰두하고 공부하고 있는지를 스스로한테 한 번 더 얘기를 해봐야 하고 그렇게 조금씩 하다 보면, 실력이 쌓이고 어느 순간 잘하니까 주변에서 자기를 찾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황정민이 얘기한 본인의 내 실력이 쌓이다 보면 주변에서 사람들이 알아서 찾게 되어 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모든 것에 있어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무언가를 잘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정확히 성실하고 착실하게 자기 실력을 계속해서 키우면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고 그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무리 매달리고 열심히 해도 결국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닌가요?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황정민은 이에 대해서도 명확한 자신만의 철학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포기를 하고 싶지 않았고 더 공부를 해야 되겠구나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의구심이 들 수는 있지만 그래도 해야 돼요. 물론 운이 따라야 되겠죠. 하지만 그 운도 자기가 만드는 거예요.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있어 본들 언제 떨어질지 몰라요. 감이 먹고 싶으면 따서 먹어야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요? 이 세상 살면서 정말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끝까지 가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일이 정말 원하는 일인지는 자기 스스로한테 딱 물어보면 정말 해답이 나와요. 내가 뭘 하고 싶지 찾고 나서 겪어봐야 해요. 감이 100미터가 됐든 1000미터가 됐든 어떻게든 올라가 봐요. 막상 올라가 봤더니 썩 좋은 감도 아니라며 버리고 다른 감나무 올라가면 되잖아요. 한 번 올라간 요령이 있으면 다음 나무도 얼마든지 갈 수 있어요.

 

마무리

그렇습니다. 첫 번째로, 정말 하고 싶은가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고 스스로 결정 내릴 수 있다면 그것을 하는 자체로 정말 큰 의미가 있고 중요한 일인 것이고. 오히려 안 하면 나중에 더 큰 미련으로 다가와 자신을 괴롭힐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과정을 에서 값진 것들을 깨닫고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보는 관점에 따라 절대 손해가 아니며 세 번째로, 실패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도전을 찾아 나서면 된다는 것이 황정민이 이야기하는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유유상종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결국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기 마련입니다. 내가 성공을 꿈꾸고 나를 많이 찾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렇게 성공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배우면 됩니다. 오늘 값진 황정민의 철학으로 좀 더 발전하는 내일이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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